호주의 에어즈락은 세계에서 가장 큰 단일 바위가 아니다.



내가 2003년에 호주에 처음 갈때만 하더라도 에어즈락에 관한 지식은 거의 없었다. 사실, 그당시엔 여행에 크게 관심이 있지도 않았고, 호주로 떠난 이유도 자유로움이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반년이 넘어가는 호주생활동안 슬슬 지루함이 밀려오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호주를 여행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잡동사니로 가득차버린 나의 뇌를 새롭게 재충전 시키고 다시 시작해보자는 마음에서였다. 처음 고려했던 여행 장소들은 호주 동부의 해안가를 따라서 있는 시드니, 브리스번, 케언즈와 같은 도시들이었다. 그렇게 호주에 관해서 조금씩 공부해가는 도중에 호주내륙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에어즈락이나 피너클스, 킹스캐년 등에 관한 정보도 조금씩 찾아나갔다. (그러는 도중에 나왔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 '결혼이야기2'라는 영화에서 호주 로케이션으로 촬영하면서 에어즈락을 다녀왔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었다.)


그때에 내가 얻은 에어즈락에 관한 정보는 '단일체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큰 바위' 나 '지구의 배꼽' 이라는 이름들 정도였다. 하지만 사진으로도, 그에 관한 설명으로도 에어즈락은 그리 매력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호주에 온 많은 사람들이 왜 그렇게 에어즈락에 열광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래서 에어즈락을 다녀온 사람들을 만날때마다 에어즈락에 관한 소감을 물었다.

대답은 둘중 하나였다.

"그냥 하나의 돌이였어."

"너무 멋진곳이었어. 호주에서 최고로 꼽을 수 있을 만큼."

중간의 의견이란 없었다. 그냥 돌이었거나, 너무 멋있다는 평가. 그것이 나의 마음을 흔들리게 만들었다. 에어즈락을 가려면 다른 지역을 가는것보다 많은 비용이 필요한데, 과연 에어즈락이 그만큼의 가치가 있을것인가에 대한 고민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고민은 크게 오래가지 않았다.

2달전쯤에 여행을 떠났던 친한 친구중 한명인 카즈가 다시 멜번으로 돌아와서 내게 에어즈락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의 말이 나의 마음을 흔든 것은 평소에 그의 여행 스타일이나 관심사등이 나와 굉장히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2달동안 호주를 돌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곳으로 쉘비치, 에어즈락을 꼽았다. (쉘비치는 서호주에 있는 곳으로 해변이 모두 조개로만 이루어진 곳이다.) 그리고 그는 에어즈락에 대해서 그가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수식어들로 포장해서 표현했다. 물론 그가 포장해서 이야기 한 것은 단순히 에어즈락이 아니었다. 그 장소에서 그가 느꼈던 느낌들을 가능한한 내게 전달하려고 애썼던 것이다. 그날 저녁 에어즈락과 쉘비치는 내 여행루트에 바로 포함되었다. 그의 말이 오랫동안 고민해오던 나의 고민을 한번에 날려버렸기 때문이다.

"에어즈락-울룰루(Ayers Rock-Ululu)"

계획을 세우고 나서 2달이 더 지난후에야 에어즈락을 다녀올 수 있었다. 울룰루-카타추타 국립공원에 있는 에어즈락은 1972년 호주인 탐험가 Ernest Giles이 발견하여 'The remarkable pebble'이라고 이름을 붙였고, 1973년 측량가 William Gosse이 이곳에 도착해 Sir Henry Ayers의 이름을 따 Ayers Rock(에어즈 락)이라고 이름 붙였는데, 현재는 에어즈락이라는 이름과 원주민어로 에어즈락의 이름인 울룰루(Ululu)가 널리 사용되고 있다. 에어즈락은 높이 318m, 둘레 8km의 거대한 바위이다. 이 거대한 바위는 단 하나로 이루어져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에어즈락이 세계에서 가장 큰 바위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단일체로 이루어진 바위로 가장 큰 것은 서호주에 있는 아우구스투스산(Mount Augustus)으로 에어즈락보다 2.5배가 더 크다. 물론 그 모양이나 위치 등으로 인해서 큰 인기를 끄는 장소는 아니지만, 적어도 세상에서 가장 큰 단일체 바위로서는 알려질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에어즈락이 왜 이렇게 인기가 있을까? 에어즈락은 호주의 노턴테리토리 남부, 즉 호주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데 일출과 일몰시에 수많은 색으로 변화한다고 해서 굉장히 유명하다. 또한 작년에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라는 영화의 개봉으로 인해서 우리나라에서도 꽤 많이 알려진 편이다. 주인공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하늘은 이곳의 하늘이다라고 했던 말, 동감이 간다. 그토록 뜨거운 곳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깨끗했던 하늘, 쉽사리 잊혀지지는 않는다. 에어즈락은 여전히 일본 관광객들에게 인기 관광지중 하나여서 케언즈에 들렸다가 비행기를 타고 단 하루동안 에어즈락과 마운트 올가를 보고 돌아가는 사람들도 많다. 특히 에어즈락의 일몰시에는 테이블을 차려놓고 와인을 마시며 일몰을 감상하는 사람들도 쉽사리 발견할 수 있다.

가장 아름다운 하늘이라던게 이 하늘이겠지..

에어즈락은 단순히 일출과 일몰을 관광하는것으로 끝낼만한 곳은 아닌데, 여행자들은 에어즈락에 더욱 가까이 접근해서 에어즈락 등반이나 베이스 웍(Base walk)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에어즈락 등반은 방문객들 에게는 꽤나 인기있는 코스인데, 이 등반은 1964년에 철로된 손잡이를 설치하고, 1976년에 확장함으로서 등반시간을 1시간정도로 줄여서 더욱 인기있어졌다. 하지만 이 등반이 항상 가능했던 건 아니다. 1983년에 호주의 수상이었던 Bob Hawke은 등반을 금지할것을 공식적으로 약속하지만 결국 그 약속은 깨져버리고 만다. 물론 현재 울룰루-카타추타 국립공원에 대한 권리는 호주 정부가 아닌 애보리진들이 가지고 있으며, 등반을 제한하고 있지는 않지만 사람들에게 등반하지 않을것을 권유하고 있을 뿐이다.

에어즈락은 에보리진에게는 신성시되는 바위이다. 에어즈락이 신성시 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그곳에서 가장 큰 바위이기 때문에 그 경외감으로 숭배되었다는 이야기와, 에어즈락이 단일체로 이루어진 바위이기 때문에 물을 흡수하지 않아 바위에 있는 웅덩이에서 물을 항상 구할 수 있어 에보리진들에게는 삶에 있어서 필수적인 장소였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처음 에어즈락에 갔을때에는 나도 에어즈락을 등반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일출을 보고 나서 등반을 하기위해서 에어즈락에 갔을때 즈음 가이드가 말했다.

"만약 외국인들이 당신들의 나라에 놀러가서, 당신들이 신성시 여기는 건물들을 기어올라간다면 과연 당신들은 어떻게 느낄 것인가? 만약에 당신들이 에어즈락에 올라가는 것이 에보리진들에게 그와같이 느껴진다고 할때에, 상관이 없다고 생각되면 올라가도 좋다."

가이드의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창덕궁이나 불국사와 같은 건물들 위로 올라간다고 생각해보면(물론 건물과 바위와의 비유가 적당하지 않아 보이긴 하지만), 한국사람들이 가만히 있을까? 아마 심한 모멸감을 느끼지 않을까? 결국 10명이 넘는 그룹에서 2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주변을 걷는 베이스 웍을 하는 것으로 결정을 내렸다. 지금도 가끔씩 에어즈락 등반에 관한 생각이 떠오르지만, 항상 등반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좋았다는 것으로 결론이 나곤 한다. 여행을 한다는 것이 단순히 보고 즐기러 가는 것이 아니라, 느끼러 떠나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서 나도 완전히 떳떳한 것은 아니다. 에어즈락은 신성시 되는 돌이기 때문에 사진촬영역시 자제해주길 권하고 있는데, 베이스웍을 하는 동안에 사진을 몇장 촬영했기 때문이다.

너무나도 아름다웠던 석양

에어즈락에서 느꼈던 즐거움은 단순히 바위로 인해서만 생긴것은 아니다. 킹스캐년을 거쳐서 에어즈락에 처음 도착했던 그날, 에어즈락과 마운트 올가를 배경으로 본 일몰은 내 생애에 있어서 가장 아름다운 일몰이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그 후에도 많은 일몰을 봐왔지만, 그때 그곳에서 느꼈던 그 감정을 다시 내게 재현해 주는 순간은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밤, 낮의 뜨거운 열기로 인해서 달아오른 텐트 안에서 잠자지 못했던 사람들은 모두 스와그(swag-매트리스 같은것)를 깔고 바닥에 누웠다. 조명이 하나도 없고, 공기는 너무나도 깨끗한 곳에서 보는 밤하늘. 거기다가 호주의 하늘엔 오존층까지 뻥 뚫려 있어서일까, 그렇게 수많은 별을 본적이 없다. 별반 하늘반이라는 표현이 딱 맞을 정도였는데, 누군가 검은천에 수억개의 구멍을 뚫어놓은것만 같았다. 카즈가 말했던 에어즈락에서 느꼈던 그 느낌들이 어디서 나왔는지 이제서야 비로소 알 것 같았다. 그리고 이 두 경험이 에어즈락에 관한 나의 생각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솔직한 에어즈락에 대한 나의 느낌은, "단지 하나의 바위다" 이다. 하지만, "단지 하나의 바위이지만 충분히 사람에게 경외감을 줄 수 있는 멋진 매력을 가진 장소에 있는 바위이다." 이기도 하다.


이 블로그의 글에는 제휴링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The links in this blog include affiliate lin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