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이 부럽지 않았던 20분, 2012 런던올림픽 성화봉송 주자의 순간!

 

 

새벽 4:55분을 몇분 남기지 않고 로비로 나오니 벌써 삼성 데스크에는 안내하기 위한 몇분이 나와있었다. 저 분들 우리가 새벽 2시에 도착했을 때도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나처럼 거의 밤을 새다시피 한 것일까? 우리는 오늘 한국에서 온 주자들이지만, 앞으로 베트남, 인도네시아, 스페인 등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이 삼성에 의해 선발되어 이 맨체스터 지역에서 뛰게 되는데.. 아마도 바쁘겠지. 어쨌든 그런 생각을 더 할 새도 없이, 주자들이 모두 나온것을 확인하자마자 우리는 바로 버스를 타고 CP(Collection Point)로 이동을 했다.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모두 1시간도 채 못자고 나오기는 했지만, 곧 성화봉송을 할 거라는 두근거림 때문이었을까. 버스 안에서 잠든 사람은 하나도 없었고, 다들 어떤 것을 하게 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눴다. 우리의 숙소는 맨체스터에 있었지만, 우리가 뛰는 곳은 프레스턴(Preston)이라는 작은 마을의 시내를 통과하는 구간이었다. 맨체스터에서 프레스턴까지의 이동시간은 약 40분.

 

 

그렇게 6시가 조금 안된 시간에 CP에 도착하니 벌써 많은 주자들이 와서 등록을 하고 있었다. 하얀 성화봉송주자 복장을 입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긴 한데, 그냥 하얀옷을 입고 있는 사람도 몇명 섞여 있었다. 주로 프레스턴, 블랙번, 맨체스터 등 주변지역에서 선발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그 가운데 한국에서 온 주자들이 중간중간 끼는 형태로 순서가 짜여져 있었다.

 

 

도착해서 등록을 하는 사람들. 이 곳에서 등록을 하면 가슴에 번호를 붙여주는데, 이 번호가 바로 자신이 뛸 번호였다. 번호를 잘 기억했다가 차례대로 나가서 뛰게 되는데, 사실 잃어버릴래야 잃어버릴 수 없을 정도로 잘 운영되어서 별다른 걱정은 없었다.

 

 

가슴에 London 2012라는 글짜가 써 있는 성화봉송주자 유니폼. 하얀색의 유니폼은 사실 어디 입고 나가면 꽤나 튈듯한 디자인이어서 이번 성화봉송을 끝낸 다음에는 그냥 기념품으로써 옷장에 남아있을 것 같은 기분이 심히 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입고있는 지금 이 순간은 이 옷을 입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성화봉송 유니폼의 밖에는 옷을 걸칠 수 없었기 때문에 추위를 걱정해 티셔츠 한장을 안에 받쳐입었다. 같은 색의 티셔츠를 안에 받쳐입는 것 정도는 허용.

 

 

여권을 가지고 이름을 확인 한 뒤에 성화봉송주자를 등록했다. 지금 등록해주고 있는 누님이 이날 우리 릴레이가 끝날 때까지 계속 따라다니면서 도와준 사람이었다. 의외로 영국 악센트가 강하지는 않아서 말을 알아듣기 쉬웠던 사람 중 한 명.

 

 

내게 배치된 번호는 36번. 우리가 뛰는 시간대인 오전 8시부터 9시 까지 구간의 주자의 번호는 23번부터 40번까지였다. 36번은 후반부에 속하는 주자였는데, 마침 내 자리가 박물관 및 공원 앞이라서 꽤 사람이 많아서 좋았었다. 사람이 별로 없었던 구간에서 뛴 사람은 아무래도 왠지 외롭지 않았을까.

 

 

내 바로 다음번호셨던 분과 함께 사진을 한장. 이 분은 맨체스터 출신으로 선발되어 이번 성화봉송 주자가 되었다. 프레스톤에도 꽤 자주 오신 듯, 대충 어떤 경로로 뛸 예정인지 확실히 파악하고 있는 듯 싶었다.

 

 

페이스북의 사연으로 뽑혀온 최자유씨와 그 바로 앞번호였던 데이빗.

 

 

그렇게 등록을 하고 있는데, 한 아이가 성화를 가지고 나타났다. 성화봉송주자 중 한명의 딸이었는데, 성화는 다소 무게감이 있기는 했지만, 아이가 들기에도 크게 무리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아주 무겁지만은 않았다는 이야기.

 

 

33번, 34번, 35번, 36번이 차례대로 앉아서 기념사진도 한장. 이 시간에 남기는 사진 하나하나가 정말 소중했다.

 

 

이번 8시~9시 타이밍에 뛰는 모든 성화봉송 주자들. 이 시간대에 뛴 한국 사람은 총 5명이었다. 그리 많지는 않은 숫자.

 

이렇게 CP를 나와 우리는 버스를 타러 갔다. 성화봉송주자는 별다른 소지품을 가지고 갈 수 없게 되어있었으므로 이 이후의 사진들은 함께 동행했던 와이프 보링보링이 찍어준 사진들이다. 뛰러가는 것은 나였는데, 어쨌든 삼성에서 동반인까지 함께 갈 수 있도록 배려해 준 덕분에 함께 갈 수 있었다. 덕분에 여러 사진들을 많이 남길 수 있어 행복했다.

 

 

내가 내릴 예정이었던 포인트. Museum of Lancashire의 앞이었는데, 주변으로 주택가가 많아서였는지 사람들도 굉장히 많았다. 물론, 이 사진이 촬영될 때 쯤에 나는 버스 안에 앉아서 내 앞에 내려 달릴 준비를 하는 주자들을 응원하고, 신기한 눈빛으로 버스 안을 쳐다보며 손을 흔드는 사람들을 향해 손을 열심히 흔드는 것이었다.

 

프레스톤이면 영국에서도 시골에 속하는 지역이었떤지라, 깔끔한 도시느낌보다는 순박한 시골느낌이 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어쨌든 성화봉송 주자들에게 손을 흔드는 아이들부터 성인들까지. 모두 하나의 축제로 이 성황봉송을 즐기는 느낌이었다.

 

 

 

박물관 앞 돌담위에 걸터앉은 사람들. 다들 영국국기를 하나씩 들고 흔들고 있었다.

 

 

아이들이 이런 진지한 표정으로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을 때, 내가 타고 있떤 버스가 도착했다. 아이들도 어떤 차에 성화봉송주자가 타고 오는지는 얼핏 알고 있는 듯한 표정이다.

 

 

성화를 들고 나온 내 모습. 열심히 손을 흔들어주는 사람들에게 나 역시 손을 흔들어주기 바빴다. 얼굴의 표정에서도 읽히듯이 정말 내리자마자 사람들의 사진 세례를 받고, 좀 당황스럽기도 하면서 꽤 기뻤다. 내가 살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내가 이곳에 내리는 것을 환영해 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 보면, 지금 이 시간이 내게는 더 특별했다.

 

 

내리자마자 가장 먼저 사진을 찍은 아저씨. 이 아저씨는 주변에서 사람들이 도로로 나오지 않도록 관리를 하는 일을 하고 계셨다.

 

 

 

 

 

 

 

 

 

그 외에도 정말 많은 아이들에 둘러싸여서 사진을 찍었다. 릴레이 포인트에서 내려서 다음 성화주자가 도착하기 전까지는 약 10~15분 정도의 시간이 있었는데, 이 짧은 시간동안 찍은 사람의 숫자가 족히 100명 이상은 되지 않을까 싶었다. 특히 아이들이 90%에 가까웠지만, 개중에는 성인도 몇명 끼어있었다.

 

너무나도 귀여웠던 다양한 표정의 아이들. 머뭇거리는 아이들도 있었고, 후다닥 다가와서 성화부터 한번 만져보는 아이도 있었다. 이들에게는 특별할 것이 없는 동양에서 온 한 청년에게 사진을 찍자고 묻게 만드는 힘이 성화봉송주자에게 있었다. 이들이 찍은 사진을 내가 나중에 받을 확률은 아마 0%에 수렴하겠지만, 올림픽의 한 부분의 기억으로 저들의 앨범속에 내 사진이 들어가있을 것을 상상하면 한 편으로는 조금 뿌듯하다.

 

 

그래도 안찍을 수는 없어서 다른 사람에게 카메라를 맡겨서 와이프 보링보링과도 함께 사진 한장 찰칵.

 

 

아예 아기를 내게 떠맏기고 사진을 찍는 사람도 있었다. 아이는 성화가 뭔지도 모르고, 그냥 금색으로 반짝이니까 관심을 가지는 것처럼 보였다. 나중에 커서 이 사진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하려나. ^^

 

 

그렇게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는데, 진행요원이 사진을 그만 찍을 것을 요청했다. 그 의미는 이전 성화봉송주자가 가까운 곳에 도착했다는 것.

 

 

먼저 성화봉송주자의 주변을 함께 따라 달리는 러너 중 한명이 도착해서 자기 소개를 하며 인사를 했다. 이 사람은 1시간 코스를 모두 성화봉송주자를 따라 뛰면서 제대로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했다. 사실, 시간 촉박하다고 엄청나게 재촉하는 역할도 했다. (-_- ); 덕분에 천천히 가고 싶었는데 엄청나게 빨리 뛰게 만든 사람.

 

 

가볍게 인사를 건넨 후 성화의 가스밸브를 열어 가스가 나올 수 있도록 했다. 그래야 성화에서 불이 이어져 달릴 수 있게 되는건데, 다른 사람들도 신기한지 어깨 너머로 그 모습을 보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 앞을 지나가는 성화 봉송 관련 자동차들. 차 안에 보이는 인형은 런던 올림픽의 공식 마스코트 웬록(Wenlock).

 

 

글리고 잠시 후 35번 성화봉송 주자가 도착했다. 내 옆으로 밀착마크 해 주는 카메라. 이 카메라는 BBC 소속이었다.

 

 

내 바로 앞주자는 삼성중공업에서 근무하시던 분이었는데, 임직원 사연으로 뽑혀서 성화봉송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했다. 어쨌든 저렇게 성화를 마주대고 조금만 있으면, 성화에서 나오는 가스 때문에 바로 다음 성화로 옮겨붙었다. 저 자세로 카메라를 응시하고 약 30초간 포즈.

 

 

그리고 이전 성화주자의 불은 꺼지고, 나는 성화를 들고 달리게 된다. 사진에는 불이 안붙어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렇게 성화를 들고 300m 가량을 달렸다. 옆에 있는 런너가 엄청 재촉하는 바람에 빨리 달려서 달리고 있는 모습의 영상은 거의 없다. 조금만 여유가 있었더라면 하는 안타까움도 조금 느껴지긴 하는데, 생각해보니.. 저 달리는 순간에는 달리는 그 순간 자체에 취했던 것 같다. 3-4분 정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될 것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었다.

 

마지막 목적지까지 달린 뒤에 다음 주자에게 불을 건네주고 나는 픽업 버스에 올라탔다. 여느 주자들과 같이 버스에 올라타자 이미 달렸던 사람들의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그 순간이 감동적이어서 우는 사람도 있었고, 나처럼 감동에 벅차올라 어쩔 줄 모르는 사람도 있었다. 성화를 들고 뛰기 전까지만 해도 아무 느낌이 없었는데, 달리는 순간부터 마무리되는 순간까지. 그야말로 탑 스타가 부럽지 않았던 20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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