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비아] 정열과 살사의 땅, 콜롬비아로 떠나다


라틴아메리카로 가고 싶었습니다. 계획대로라면 1년은 일찍 떠났어야 하는 여행이지만, 교환학생으로 미국을 가게되어 1년이 미뤄졌습니다. 그래도 미국에 있는 기간동안 스페인어를 더 공부할 수 있었으니 여행을 위해서라면 더 잘 된 일인지도 모릅니다. 물론, 미국에 있는동안 게으름과 귀차니즘이 발동하는 바람에 공부를 열심히 한 건 아니었지만, 여태껏 살아오면서 그렇게 즐겁게 걱정없이 살아본 적도 없었습니다.

미국에서의 시간들은 지나가고, 새로운 삶이 제 앞에 다가올 예정입니다. 스페인어 공부를 1년 넘게 했다고는 하지만, 읽기 쓰기 위주의 공부를 했기 때문에 듣고 말하는데에는 큰 자신이 없어 두려움도 마음 한켠에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가고싶었던 남미를 포기할리는 없고, 그저 새로운 세계에 대한 궁금증만 점점 더 증폭 될 뿐이었지요.

미국을 떠나는 날, 같이 교환학생으로 왔던 친구들과 함께 아틀랜타로 갔습니다. 다들 각자 원하는 목적지로 떠나기 위해서였지요. 밤을새면서 달렸던 5월 7일의 밤. 아직도 그 밤을 잊지 못하겠습니다. 제 인생에 있어서 몇 안되는 큰 변환점 중 하나였기 때문이지요. 한국으로 돌아갈 사람은 한국으로 돌아가고, 동부쪽에 살던 친구는 동부쪽으로, 그리고 저는 콜롬비아 메데진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위해 마이애미로 향하는 연결편에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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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랜타에서 마이애미까지의 짧은 비행. 창문아래로 마이애미의 새파란 바다가 보이기 때문인지 아직 라틴아메리카로 떠난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그래도 하늘에 보이는 뭉게구름들이 한껏 기분을 들뜨게 만들어줍니다. 해외에서 해외로 떠나는 여행인데도 이렇게 두근거린다는건 역시 가슴도 원하던 것이었다는 거겠지요. 두근거리는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이번 여행이 학창시절의 마지막 여행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한국에 돌아가게 되면 마지막 학기, 취업을 해야 하는 학생의 입장이 될 테니까요. 그 생각을 하면 아찔하지만, 일단 현재를 즐기는게 제게는 최선입니다.

아직도 미국이군요. 조금 후에 마이애미에서 콜롬비아행 Avianca 비행기를 타면 정말 떠나는 기분이 들겠지요. 아침을 제대로 못먹었던 터라 허기를 채우기 위해 마이애미 공항에 내리지마자 먹을만한 곳을 찾아다녔습니다. 결국 들어간 곳은 버거킹. 역시 공항에서 파는 음식들은 다 너무 비싸기 그지 없군요.

여행을 할때마다 버거킹을 자주 들렸는데, 갈때마다 웃지못할 추억이 생기곤 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여전히 버거킹을 좋아하는건지도 모르겠네요. 주문하자마나 나온 커다란 버거를 한입 베어물고는 주위를 둘러봤습니다. 지내던 미시시피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 라틴계열의 사람들이 눈에띄게 많아졌습니다. 그동안 덤덤했는데 갑자기 몰려드는 감정.

"아.. 떠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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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편이 그다지 길지 않았기 때문에 바로 Avianca로 체크인을 하러 갔습니다. 비록 사진은 찍지 못했지만, 체크인 카운터에는 미녀분들이 여럿.. 역시 미녀로 유명하다는 콜롬비아 사람들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줄을 섰습니다. 그때, 말쑥하게 차려입은 직원이 다가와서 물었습니다.

"¿Habla español?(스페인어 하세요?)"

뭔가 이상했습니다. 보통, "Do you speak Spanish?"라고 물어야 하는데, 바로 스페인어로 물어보는 센스라니. 제가 그쪽에서 온 사람이라면 이해를 하겠지만, 생긴건 완전히 한국사람인 제게 그렇게 묻다니요!! 물론, 가끔 중국이나 동남아쪽으로 오해를 받긴 하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다 싶어서 대답했습니다.

"Un poco.(조금요)"

잠시 저를 쳐다보더니, 스페인어로 되어있는 입출국 폼를 주고 갑니다. 스페인어로 쓸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모르는 단어들이 곳곳에 보여서 실수를 할것만 같은 불안한 기분이 들어 다시 직원을 불렀습니다.

"Señor!! Do you have this form in English?"

순간적으로 절 쳐다봅니다. 그리고는 스페인어로 대답하는 센스. 알고보니 이 아저씨 영어를 거의 못하시는데, 스페인어권 사람들 사이에 끼어있으니 그냥 함께 주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되지도 않는 스페인어로 설명해서 겨우 영어로 된 폼을 들고 하나하나 기재했습니다. 체크인 카운터의 아가씨조차도 영어를 잘 못한다는데에 살짝 충격을 받았지만, 어쨌든 체크인 자체가 별다른 대화가 필요하지 않은 작업이니만큼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는데 안도를 삼습니다. 사실, 제 보딩 패스를 발권해준 아가씨가 너무 이뻐서 말이 잘 안나오고 떨린건 절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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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딩패스를 받아들자 드디어 실감이 났습니다. 라틴아메리카로 떠난다는 그 기분이.

시간이 조금 촉박했었는데, 보딩타임이 2시간이나 연장되는 바람에 할일이 없어졌습니다. 에어컨이 잘 나오는 대기실에서 멍하니 티비를 보고, 가이드북을 뒤적거리고 있는데 누가 와서 말을 겁니다. 슬쩍 뒤를 돌아보니 머리를 짧게 자른 한 청년이 서있었는데, 스타일을 보니 영락없는 군인. 자기도 일찍 이곳에 도착했는데, 시간이 연장되는 바람에 할일이 없어져서 심심하다고 하는군요. 뭐, TV에서는 똑같은 것만 반복되서 지겨운 차였는데 말동무가 생겨서 좋았습니다.

이름은 가이(Guy). 콜롬비아 메데진으로 가는 이유는 결혼식을 하기 위해서라고 하네요. 콜롬비아도 여행온 미국인들과 잘 되서 그린카드를 받아보려는 여자들이 많고, 미국사람들은 가서 젊은 여자와 결혼하려는 그런 풍조가 많아 첫인상은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한국사람들이 베트남이나 중국등의 여자와 결혼하는 그런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조금 시큰둥 했는데, 이 붙임성 좋은 녀석. 지갑에서 수두룩하게 사진을 꺼내듭니다. 자랑이 하고싶었던거였군요. 웃는 얼굴로 사진을 하나하나 보는데, 설명도 빠짐없이 곁들여 줍니다. 2년간 콜롬비아에 파견나가 있었는데, 그때 친해졌다고 합니다. 사진들을 보여주면서 얼마나 이쁘냐고, 난 정말 행운아라고 말하는 녀석을 보면서 웃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결혼식을 위한 준비를 위해서 잠깐 미국에 들어왔다가 다음주에 결혼식을 올리기 위해 다시 콜롬비아로 돌아간다며, 갑자기 저에게 뭔가를 적어줍니다.

"이렇게 만난것도 인연이니, 시간이 되면 다음주 우리 결혼식에 놀러와." 주소로 봐서는 어딘지 모르지만, 어쨌든 받아들었습니다. 나중에 그의 결혼식을 찾아가기도 했고, 몇번 개인적으로 만나기도 했지요. 좋은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거 아셨나요? 미국을 떠날때는 CUSTOM을 거칠 필요가 없다는 거. 덕분에 도대체 어디있는지 한참 찾아서 돌아다니고, 사람들한테 이리저리 물어본 후에야 미국을 나갈땐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에구.. 사람들이 얼마나 멍청하게 봤을까. 나갈때 도장도 안찍어주더군요.

그렇게 타게 된 비행기 안에는 동양인이 저 하나 뿐이었습니다. 물론, 이것이 동양인 자체를 거의 못보게 될 징조라는건 생각도 못했었지요. 새벽에 밤도새고 낮에는 공항에서 비행기 기다리느라 시간을 보내 엄청나게 피곤했던 관계로 비행기에서는 또 기절하고 말았습니다.물론, 배고픈 것은 참지 못하기 때문에 밥줄때는 알아서 깨더라구요. 참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떻게 4시간이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메데진에 도착했습니다. 스페인어는 제대로 들리지도 않고, 우왕좌왕 하고 있는데 옆에 앉아있던 부부가 어떻게 콜롬비아에 왔냐면서 여러가지 질문을 하기 시작합니다. 콜롬비아에서는 영어를 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다고 들었는데, 처음부터 이렇게 도움을 받다니. 도와주는 마르꼬스 아저씨의 얼굴이 천사처럼 보였습니다. 이 부부는 메데진에서 내과 병원을 경영하고 있는 부부였는데, 역시 인텔리한 느낌. 마이애미로 휴양을 다녀오는 길이라고 하더군요. 덕분에 세관에서 수속하는것부터 자잘한것까지 잘 설명해줘서 스페인어를 잘 못알아듣던 제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거기다가 공항을 떠날 때 택시를 잡아주고 설명하는 친절함까지 발휘해서 너무 고마웠습니다. 나중에 제가 그 병원으로 과일바구니까지 사가지고 찾아갔었다니까요!

Rio Negro 공항에서 메데진 시내까지는 50분정도 걸렸는데, 택시기사에게 가능한 한 많은 스페인어를 사용해보려고 노력했습니다. 물론, 나오는 말이라고는 도시가 이쁘다, 공부하러 왔다 정도였지만 제 말 한마디 한마디를 들어주려고 노력하는 택시기사 때문에 콜롬비아의 이미지는 점점 좋아졌습니다. 그렇게 도로를 달리는데, 눈앞에 메데진의 야경이 들어왔습니다. 메데진은 해발 1800m에 있는 도시인데 분지형태로 되어있고, 공항이 높은 곳에 있다보니 내려오는 길에 불이 환하게 밝혀진 도시가 보입니다. 도시 어느곳에서도 주위의 야경을 볼 수 있는 신기한 도시이기도 했지요.

미리 예약을 해둔 호스텔에 도착한 시간은 저녁 10시. 조금 애매한 장소에 있는 호스텔이라 찾기는 조금 어려웠지만, 그래도 열심히 전화도 해주고 도와줬던 택시기사. 역시 어느곳이던지간에 이미지는 사람이 만드는 것이라는 사실이 맞는 것 같습니다. 호스텔에 오자마자 잠도 못자고 피곤한 몸으로 디스꼬떼까에 다녀오긴 했지만, 행복했습니다. 왠지 여기서 있을 앞으로의 시간들이 너무 즐거울 거란 생각과 함께 말입니다.

이렇게, 라틴아메리카에서의 첫날이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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