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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클 크릭을 떠나 컬럼비아강 하구, 아스토리아로
서클 크릭 RV 리조트에서 이틀을 묵고 다시 길을 나섰다. 이날의 목적지는 오리건주 북쪽 끝, 컬럼비아강이 태평양과 만나는 하구의 도시 아스토리아(Astoria)와 그 바로 옆의 포트 스티븐스 주립공원(Fort Stevens State Park). 아스토리아는 1811년 모피 교역소로 시작된 도시로, 로키산맥 서쪽에서 가장 오래된 미국인 정착지로 알려져 있다. 언덕을 따라 빅토리아풍 주택들이 늘어선 항구 도시로, 영화 〈구니스(The Goonies)〉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아스토리아로 들어가는 다리. 이날은 오랜만에 하늘이 맑게 개어 있었다.

아스토리아 컬럼으로 올라가는 숲길에서는 사슴들이 길가에서 풀을 뜯고 있었다.

아스토리아 컬럼(Astoria Column)
아스토리아 뒤편 언덕 위에 서 있는 아스토리아 컬럼은 1926년에 세운 높이 약 38m(125ft)의 기념탑이다. 당시 그레이트 노던 철도(Great Northern Railway)의 사장이 이 지역 개척의 역사를 기념하려고 세웠는데, 탑 표면을 나선형으로 감싸며 그 역사가 그림으로 새겨져 있다.
입구에서 직원이 차를 세우고 주차비를 받는다. 주차비는 현재(2026년) 기준 차량당 10달러이고, 이 영수증이 그해 말까지 주차권으로 쓰인다. 탑에 올라가는 것 자체는 무료다.

캠핑카는 탑 앞 주차장에 세울 수 있었다.

탑에 새겨진 그림을 올려다보면 원주민의 삶부터 1792년 로버트 그레이 선장(Capt. Robert Gray)이 컬럼비아강에 들어온 장면, 루이스와 클라크 탐험대 같은 이야기가 차례로 이어진다.

탑 안에는 좁은 나선형 철제 계단이 꼭대기까지 이어진다. 계단은 164개로, 폭이 좁은 편이다.

꼭대기 전망대에 서면 아스토리아 시내와 컬럼비아강, 그리고 강을 건너 워싱턴주로 이어지는 아스토리아-메글러 다리(Astoria-Megler Bridge)가 한눈에 들어온다.

강 하구에는 큰 화물선들이 닻을 내리고 있었다. 컬럼비아강을 따라 내륙의 항구로 들어가는 배들이다.

반대편으로는 영스 베이(Youngs Bay)와 숲, 멀리 해안 산맥이 겹겹이 이어진다.

기념품점에서는 ‘ASTORIA COLUMN’이 찍힌 작은 나무 글라이더를 판다. 이걸 사서 탑 꼭대기에서 날리는 것이 이곳의 유명한 재미 중 하나다. 정상에서 아이들과 함께 날린 글라이더가 바람을 타고 탑 아래 잔디밭 멀리 내려앉았는데 아이들이 좋아했다.

탑 옆 잔디 언덕에는 이 지역 원주민 치누크(Chinook)족의 추장 콤콤리(Comcomly)를 기리는 카누 조형물이 놓여 있었다.

아스토리아 시내와 컬럼비아 리버 해양 박물관
아스토리아 컬럼에서 내려와 시내의 세이프웨이(Safeway)에서 장을 봤다. 입구에는 할로윈을 앞두고 호박이 잔뜩 쌓여 있었다.

점심은 마트에서 사 온 중국 음식과 초밥으로 캠핑카 안에서 간단히 해결했다.

오후에는 강변의 컬럼비아 리버 해양 박물관(Columbia River Maritime Museum)으로 향했다. 파도가 거칠기로 유명한 컬럼비아강 하구, 이른바 ‘태평양의 무덤’에 얽힌 배와 구조 이야기를 전시하는 박물관이다.

박물관 앞 강변에는 거대한 닻 조형물이 있고, 그 뒤로 붉은 등대선 컬럼비아호(Lightship Columbia)가 정박해 있다. 등대가 없는 하구 입구에 떠서 등대 역할을 하던 배로, 박물관 입장권이 있으면 배 안까지 둘러볼 수 있다. 우리는 이날 박물관 안까지는 들어가지 않고 강변을 따라 걸었다.

강변에서 보면 아스토리아-메글러 다리가 바다처럼 넓은 강 위로 길게 이어진다.

강변 도로를 따라서는 아스토리아 리버프런트 트롤리(Astoria Riverfront Trolley)의 선로와 정류장이 있다. 정류장 옆의 빨간 부표 조형물이 항구 도시다운 분위기를 낸다.

포트 스티븐스의 피터 아이어데일(Peter Iredale) 난파선
아스토리아 시내에서 20분 정도 서쪽으로 가면 포트 스티븐스 주립공원이다. 공원 안 해변에는 100년이 넘은 난파선이 그대로 남아 있다. 해변 바로 앞에 주차장이 있어서 차에서 내려 몇 걸음만 걸으면 된다.

피터 아이어데일호는 영국의 4개 돛대 범선으로, 1906년 10월 25일 이 해변에 좌초됐다. 다행히 선원들은 모두 무사했지만 배는 끝내 끌어내지 못했고, 녹슨 뼈대만 남아 지금은 오리건 해안의 명소가 되었다.

해변에는 이 배와 컬럼비아강 하구의 난파 역사를 소개하는 안내판이 있다. 강물과 바닷물이 부딪히는 하구는 예부터 수많은 배가 사고를 당한 곳이다.

배터리 러셀(Battery Russell)
포트 스티븐스는 남북전쟁 때부터 2차 세계대전까지 컬럼비아강 하구를 지키던 요새였다. 공원 안에는 그때의 포대가 여럿 남아 있는데, 그중 하나가 1904년부터 1944년까지 쓰였던 배터리 러셀이다. 다른 포대들과 떨어져 홀로 바다 쪽을 향하고 있던 2층짜리 콘크리트 포대다.

1942년 6월 21일 밤, 일본 잠수함 I-25가 이곳 포트 스티븐스를 향해 포탄 17발을 쏘았다. 2차 세계대전 중 미국 본토의 군사 시설이 적의 포격을 받은 유일한 사건으로, 요새에는 큰 피해가 없었다고 한다.

콘크리트 포대 안팎은 자유롭게 걸어 다닐 수 있다. 벗겨진 벽과 긴 복도가 오래된 요새의 분위기를 그대로 보여준다.

안쪽 방들은 어둡고 바닥에 물이 고여 있는 곳도 있다.

포트 스티븐스 주립공원 캠핑장(Fort Stevens State Park Campground)
이날 밤은 공원 안의 캠핑장에서 묵었다. 오리건 주립공원 캠핑장 중에서도 규모가 큰 곳으로, 숲속에 여러 개의 루프가 이어져 있다. 예약은 오리건 주립공원 예약 사이트 [링크]에서 할 수 있다.
입구의 등록 사무소에서 체크인을 한다. 체크인은 오후 4시부터다.

직원이 캠핑장 지도에 우리가 예약한 사이트 위치를 펜으로 표시해 주었다.

배정받은 사이트에 캠핑카를 세웠다.

사이트에는 전기와 물을 연결할 수 있다. 숲에 둘러싸여 있어서 서클 크릭과는 또 다른 분위기다.

사이트 바로 옆에 화장실과 샤워실 건물이 있다. 공원 안에는 캠핑장 말고도 컬럼비아강 하구의 방파제를 내려다보는 사우스 제티 전망대(South Jetty Observation Tower)와 숲속의 커펜버리 호수(Coffenbury Lake) 같은 곳이 있어서, 하루 이틀 머물며 둘러보기 좋다.

캠핑장 안에는 셀프서비스로 장작을 사는 곳도 있다.

해 질 녘 난파선 앞 해변에서 레이저클램 캐기
저녁에는 다시 피터 아이어데일 난파선이 있는 해변으로 나갔다. 이 해변도 클랫섭(Clatsop) 해변의 일부라, 썰물 때가 되면 레이저클램을 캐러 온 사람들이 모여든다. 전날 델레이 비치에 이어 이틀 연속, 미국의 맛조개라고 할 수 있는 레이저클램(Razor Clam) 캐기다. 한국에서도 아이들과 해루질을 하러 다니는 것을 즐겼는데, 미국에서도 여행 시기 상 기회가 될 것 같이 미리 해루질 장비를 잘 챙겨왔다.

구멍이 잘 안 보일 때는 모래 위를 발로 쿵쿵 구르며 걸어 다니면 된다. 진동에 놀란 레이저클램이 몸을 움츠리면서, 안 보이던 작은 구멍이 모래 위에 하나둘 나타난다. 젖은 모래에 난 작은 구멍을 찾으면, 파이프 모양의 클램 건(Clam Gun)을 그 위에 대고 꾹 눌러 박는다.
한국에서는 저런 건 형태가 허용되지도 않지만, 갯벌이 단단해서 잘 들어가지도 않는다. 하지만, 여기서는 모래에 넣는 것이기 때문에 저 큰 건이 아주 쉽게 모래 속으로 쑥 들어간다.

그대로 모래를 뽑아 올리면 그 안에 레이저클램이 딸려 나온다.

구멍을 찾고, 박고, 뽑아 올리기를 계속 반복했다.

장화를 신고 도구를 하나씩 들고 다음 구멍을 찾아 나선 아이들.

그물망에 조금씩 레이저클램이 쌓여 갔다. 전날보다 훨씬 많이 캤다. 첫날은 캐는 요령을 몰라서 잘 못캤는데, 그나마 좀 알게되었기 때문. 그렇지만, 제대로 캐는 방법은 한국에 돌아와서야 알 수 있었다. 방법만 제대로 알았다면 성인 1인 15개, 총 30개를 캐 올 수 있었는데, 아쉬울 따름이다.
레이저클램은 하루에 처음 캔 15개까지만 가져갈 수 있고, 12세 이상은 오리건 조개·게 채취 면허 [링크]가 필요하다.

해가 지면서 물이 고인 모래 위로 구름이 그대로 비쳤다.

캠핑카에서 레이저클램 요리 2탄
캠핑장으로 돌아와 이날 캔 레이저클램으로 다시 요리를 했다. 전날보다 훨씬 많이 캐서, 데쳐서 껍데기를 벗기고 내장을 하나하나 손질하는 데만 한참이 걸렸다.

손질을 마친 레이저클램 살.

이번에는 오리건의 유제품 브랜드 틸라묵(Tillamook)의 버터를 썼다. 다음 날 바로 그 틸라묵에 가게 된다.

버터에 파를 볶다가 레이저클램 살을 넣고 볶았다.

전날보다 양이 많아 접시가 넉넉하게 찼다.

양이 많아서 다음 날 아침에는 남은 레이저클램 볶음을 샌드위치와 함께 아침으로 먹었다.

캠핑장을 나서기 전에는 입구의 덤프 스테이션에서 오수 탱크를 비웠다. 다음 날은 오리건 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며 틸라묵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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