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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워나 캠핑장의 아침,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와워나 캠핑장에서의 밤은 엄청 추웠다. 자는 동안 어디선가 ‘틱, 틱’ 하는 이상한 소리가 들려서 뭔가 싶었지만, 피곤해서 그냥 잤다.
그런데 아침에 출발하려고 보니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차량의 메인 배터리가 방전되어 있었던 것이다. 밤새 들리던 틱틱 소리도 아마 그와 관련이 있었던 것 같다. 캠핑카에는 생활용 배터리로 메인 배터리에 전기를 보태 주는 점프 기능이 있지만, 그것으로도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다행히 옆 사이트에 있던 사람이 휴대용 점프 스타터를 가지고 있어서, 그걸 빌려 겨우 시동을 걸 수 있었다. 그 뒤로는 여행이 끝날 때까지 시동 문제가 한 번도 없어서 끝내 원인은 알 수 없었다. 다만 이 일 이후로 우리는 캠핑카든 렌터카든 휴대용 점프 스타터를 꼭 챙겨 다닌다.
이날은 요세미티 남쪽의 마리포사 그로브에서 시작해, 요세미티 밸리를 다시 지나 타이오가 로드로 공원을 가로질러 동쪽으로 나간 뒤, 맘모스 레이크스(Mammoth Lakes)를 거쳐 크롤리 호수(Crowley Lake)까지 가는 일정이었다.

마리포사 그로브(Mariposa Grove)와 무료 셔틀
와워나에서 남쪽 입구 쪽으로 조금만 가면 마리포사 그로브다. 요세미티에서 가장 큰 자이언트 세쿼이아 숲이다.

마리포사 그로브까지 들어가는 도로는 길이 21피트(약 6.4m)가 넘는 차량과 트레일러가 들어갈 수 없다. 그래서 캠핑카는 입구의 웰컴 플라자(Welcome Plaza) 주차장에 있는 대형 차량 전용 주차 구역에 세웠다.

웰컴 플라자에는 기념품점과 화장실, 셔틀 정류장이 있다.

여기서 무료 셔틀버스를 타고 숲 입구까지 10분 정도 올라간다. 안내판 기준으로 셔틀은 4월 셋째 주부터 11월 30일까지, 날씨가 허락하는 동안 운행한다.

‘MARIPOSA GROVE OF GIANT SEQUOIAS’ 간판이 숲 입구를 알린다.

입구부터 붉은 줄기의 거대한 세쿼이아들이 늘어서 있다. 아이들은 신이 나서 앞서 뛰어갔다.

초입에는 뿌리째 쓰러진 거대한 세쿼이아 ‘폴른 모나크(Fallen Monarch)’가 있다. 세쿼이아의 뿌리가 생각보다 얕게 넓게 퍼져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흙길을 따라 숲 안쪽으로 걸었다.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세쿼이아 줄기가 끝없이 이어진다.

안내판에는 산불과 세쿼이아의 관계가 적혀 있다. 세쿼이아는 불이 지나가면서 다른 나무를 정리하고 씨앗이 싹틀 자리를 만들어 주기 때문에, 오히려 적당한 산불이 필요한 나무다.

숲 안쪽에 이 그로브에서 가장 유명한 나무, 그리즐리 자이언트(Grizzly Giant)가 있다.

안내판 기준 높이 63.7m(209ft)이고, 나이는 2천 년 안팎으로 추정된다. 굵은 가지 하나가 웬만한 나무 줄기보다 굵다.

조금 더 가면 줄기 가운데에 사람이 지나갈 수 있는 구멍이 뚫린 캘리포니아 터널 트리(California Tunnel Tree)가 나온다. 1890년대에 마차가 지나가도록 뚫은 구멍이다.

지금도 사람들이 이 나무 터널 앞에서 줄을 서서 사진을 찍는다.

셔틀을 타고 내려와 웰컴 플라자의 기념품점에 잠시 들렀다.

와워나 호텔과 요세미티 밸리 뷰(Valley View)
마리포사 그로브를 나와 다시 요세미티 밸리 쪽으로 올라가는 길에, 1800년대 후반에 지은 하얀 목조 건물 와워나 호텔(Wawona Hotel) 앞을 지났다.

41번 도로로 밸리에 들어서기 전, 전날 들렀던 터널뷰 쪽에서 다시 한번 하프돔과 엘 캐피탄이 보였다.

밸리를 빠져나가는 길에는 머세드강 옆의 밸리 뷰(Valley View)에 차를 세웠다. 강물 위로 왼쪽에 엘 캐피탄, 오른쪽에 브라이덜베일 폭포 쪽 절벽이 비친다. 도로 옆 작은 주차 공간이라 지나치기 쉽지만, 요세미티 밸리를 강물에 비춰 볼 수 있는 곳이다.

다시 타이오가 로드로
요세미티 밸리를 뒤로하고 다시 타이오가 로드에 올랐다. 전날 내려왔던 길을 거꾸로 올라가는 셈이다. 고도를 높이자 멀리 테나야 호수와 화강암 봉우리들이 내려다보였다.

매끈한 화강암 돔 옆을 지나 투올럼니 메도스로 향했다.

투올럼니 메도스(Tuolumne Meadows)와 소다 스프링스
투올럼니 메도스는 해발 약 2,600m의 넓은 고산 초원이다. 도로 옆 주차장에 캠핑카를 세우고 초원을 가로지르는 트레일을 걸었다.

목표는 초원 건너편의 소다 스프링스(Soda Springs)와 파슨스 메모리얼 로지(Parsons Memorial Lodge)다.

누렇게 마른 초원 사이로 흙길이 이어진다. 평탄해서 아이들과 걷기 좋았다.

소다 스프링스는 땅에서 탄산이 섞인 광천수가 솟아나는 곳이다. 철분 때문에 주변 땅이 붉게 물들어 있다.

안내판에는 ‘이 물을 마셔도 되나요?’라는 질문과 함께 이 샘에 얽힌 옛이야기가 적혀 있다.

샘 주변을 둘러싼 통나무 울타리.

조금 더 가면 돌로 지은 파슨스 메모리얼 로지가 있다. 초기 시에라 클럽의 산행 가이드였던 에드워드 파슨스를 기려 1915년에 시에라 클럽이 지은 건물이다.

근처에는 옛 매컬리 캐빈(McCauley Cabin)도 남아 있다.

트레일 끝에서는 투올럼니강 너머로 뾰족한 봉우리가 보인다.

잔잔한 강물에 소나무와 산이 비쳤다.

길가에는 ‘존 뮤어 트레일(John Muir Trail)’ 표지가 서 있다. 요세미티 밸리에서 미국 본토 최고봉 휘트니산까지 약 340km를 잇는 장거리 트레일이 이곳을 지난다.

타이오가 패스를 넘어 동쪽으로
투올럼니 메도스를 떠나 타이오가 패스를 넘어 공원 밖으로 나왔다. 고개를 넘자마자 길옆에 타이오가 호수(Tioga Lake)가 나타난다.

조금 더 내려가면 엘러리 호수(Ellery Lake)가 이어진다. 메마른 바위산 아래 짙은 청록색 물빛이 인상적이다.

호숫가 도로변에 잠시 캠핑카를 세웠다.

여기서부터 120번 도로는 가파른 협곡을 따라 리 바이닝으로 단숨에 내려간다.

리 바이닝에서 395번 도로를 타고 남쪽의 맘모스 레이크스로 향했다.

맘모스 레이크스(Mammoth Lakes)
맘모스 레이크스는 스키장으로 유명한 산악 마을로, 마을 위쪽 산속에 크고 작은 호수가 모여 있는 호수 분지(Lakes Basin)가 있다. 가을이라 호숫가 관목이 노랗게 물들어 있었다.

호수 위에서는 튜브 보트를 타고 낚시하는 사람이 보였다.

전망 지점에서 내려다보니 숲 사이로 작은 호수들이 줄지어 이어졌다.

호수 분지 안쪽의 한 호수는 물이 빠져 바닥이 넓게 드러나 있었다.

마을로 내려오기 전에 산 위의 전망대에 올랐다. 돌담 전망대에 주변 산들을 설명하는 안내판이 늘어서 있다.

전망대 건너편으로는 톱날처럼 뾰족한 봉우리들이 늘어선 산줄기가 펼쳐진다.

맘모스 레이크 마을 중심가. 스키 리조트 마을답게 산장풍 건물과 상점이 늘어서 있다.

크롤리 호수 RV 파크(Crowley Lake RV Park)
맘모스 레이크에서 395번 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20분쯤 내려가 크롤리 호수 마을의 크롤리 호수 RV 파크에 도착했다. 노랗게 물든 나무들 사이에 있는 작은 RV 파크다.

사무실에서 체크인을 했다. 체크인과 체크아웃은 낮 12시 기준이다. 늦게 도착했지만, 직원분도 굉장히 친절하고, 맛집(이라지만 건너편에 먹을 곳이 1곳 ㅋㅋ)도 소개시켜 줬다.

사이트에는 피크닉 테이블이 있고, 전기와 수도, 오수 연결이 모두 된다.

RV 파크 바로 옆에는 주유소와 함께 있는 빨간 건물의 카페·델리·피자 가게가 있다.

아침 메뉴부터 샌드위치, 피자까지 칠판 메뉴판에 가득 적혀 있다. 낚시용품과 식료품, 장작도 함께 판다.

저녁은 여기서 페퍼로니 피자 한 판을 사 와서 먹었다. 갓 구운 피자라 따뜻했다. 아저씨가 피자 맛집이라더니, 피자가 정말 생각 이상으로 맛있었다. 배고파서 그랬으려나?

RV 파크의 샤워실은 칸마다 커튼이 달려 있고 깔끔했다.

세탁실에는 카드로 결제하는 세탁기와 건조기가 있다.

다음 날 아침은 관자를 버터에 구워 수프와 함께 먹었다. 10월인데도 고도가 높아서 그런지 새벽에 영하까지 떨어졌었다. 물론, 동파되는 수준은 아니고 영하 1~2도였지만, 캠핑카는 더 낮아지면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에 차 안 난방을 빵빵하게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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