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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클 크릭에서 캐넌 비치로, 오리건 해안의 하루
서클 크릭 RV 리조트에서 맞은 아침. 이날은 같은 캠핑장에 하루 더 묵기로 해서, 짐을 정리할 필요 없이 오리건 북부 해안을 한 바퀴 돌고 다시 돌아오면 되는 일정이었다. 오전에는 캐넌 비치(Cannon Beach)와 해안 전망대, 점심 무렵에는 네할렘 베이(Nehalem Bay)에서 보트를 타고 게잡이, 오후에는 해변에서 미국의 맛조개라고 할 수 있는 레이저클램(Razor Clam) 캐기까지. 바다에서 먹을 것을 직접 구해 보는 하루였다.

캐넌 비치는 서클 크릭에서 남쪽으로 15분 정도면 닿는다. 헤이스택 록 공영 주차장(Haystack Rock Public Parking)에는 대형 차량 전용 구역이 따로 있어서, 캠핑카도 걱정 없이 세울 수 있었다.

주차장에서 주택가 사이의 좁은 모래길을 따라 몇 분만 걸어가면 바로 해변이 나온다.

캐넌 비치와 헤이스택 록(Haystack Rock)
캐넌 비치의 상징은 해변 앞에 솟은 헤이스택 록이다. 높이 약 72m(235ft)의 현무암 바위로, ‘건초 더미(Haystack)’를 닮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바위 주변은 오리건 아일랜드 국립 야생동물 보호구역(Oregon Islands National Wildlife Refuge)에 속한다.

흐린 날이었지만 해변은 넓고 평평해서 걷기에 좋았다. 물이 빠진 시간이라 젖은 모래가 넓게 드러나 있었다.

헤이스택 록 옆의 뾰족한 바위들은 니들스(The Needles)라고 부른다. 썰물 때는 바위 아래까지 걸어갈 수 있고, 바위 밑 물웅덩이에서 불가사리나 말미잘 같은 바다 생물을 볼 수 있다. 봄부터 여름까지는 바위에 둥지를 트는 퍼핀(Tufted Puffin)으로도 유명한데, 10월이라 퍼핀은 이미 떠난 뒤였다.

젖은 모래에 비친 헤이스택 록. 바람이 없어서 반영이 꽤 선명했다.

해변에서 마을로 올라가는 계단 옆에는 바위 주변 생물들을 소개하는 안내판이 있다.

해변에서 올라오면 바로 캐넌 비치 마을이다. 헤이스택 록 앞을 지나는 헴록 스트리트(Hemlock St)를 따라 카페와 갤러리, 상점들이 모여 있는 작은 해변 마을로, 오리건 북부 해안에서 손꼽히는 휴양지다. 해변으로 내려가는 길마다 비치 액세스(Beach Access) 표지판이 붙어 있어서 마을 어디에서든 해변으로 나가기 쉽다.

실버 포인트와 네아카니 산 전망대(Neahkahnie Mountain Viewpoint)
캐넌 비치를 나와 101번 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갔다. 첫 번째로 멈춘 곳은 실버 포인트(Silver Point) 전망대. 도로 옆에 차를 세우면 바로 해안이 내려다보인다.

북쪽으로는 지나온 캐넌 비치와 헤이스택 록 쪽 해안선이 이어진다. 안개가 낮게 깔려 있어서 곶들이 겹겹이 흐릿하게 보였다.

조금 더 남쪽, 오스왈드 웨스트 주립공원(Oswald West State Park) 안의 네아카니 산 중턱에도 도로변 전망대가 있다. 절벽 위에서 만자니타(Manzanita) 해변과 네할렘 베이 쪽 해안이 길게 내려다보이는 곳이다. 이날은 해안을 따라 구름이 낮게 깔려서, 구름 위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는 듯한 풍경이었다.

절벽을 따라 난 101번 도로와 돌담. 전망대는 도로 바로 옆이라 잠깐 차를 세우고 보기 좋다.

제티 피셔리(Jetty Fishery)에서 보트 타고 게잡이
이날의 메인 일정은 게잡이였다. 네할렘 베이가 바다와 만나는 곳에 있는 제티 피셔리는 1979년부터 한 가족이 운영해 온 곳으로, RV 파크와 보트 대여, 해산물 가게를 함께 하고 있다.

가게 안 화이트보드에 보트 대여와 게잡이 요금이 적혀 있다. 게잡이 패키지에는 미끼를 단 게 그물 3개와 크기를 재는 자, 양동이, 보트와 모터, 기름, 안전 장비, 잡은 게를 삶아 주는 것까지 들어 있다. 현재 홈페이지 기준 요금은 130달러이고, 보트 보증금이 따로 있다. 직원이 위성 지도를 펼쳐 놓고 어디쯤에 그물을 내리면 되는지 표시해 주었다. 보트가 부담스럽다면 선착장에서 그물을 내리는 도크 크래빙(Dock Crabbing)도 할 수 있다.

가게에는 암수 구별 안내도 놓여 있다. 오리건에서 던저니스 크랩(Dungeness Crab)은 수컷만, 등딱지 폭 5¾인치(약 14.6cm) 이상만 가져갈 수 있고, 레드 록 크랩(Red Rock Crab)은 암수와 크기에 관계없이 가져갈 수 있다. 그리고 12세 이상은 오리건 조개·게 채취 면허(Shellfish License)가 필요하다. 면허는 ODFW 홈페이지 [링크]에서 온라인으로 살 수 있다.

보트는 15피트짜리 작은 알루미늄 보트. 직원이 모터 켜는 법부터 운전하는 법까지 알려 주니 처음이어도 어렵지 않다.

구명조끼를 입고 만으로 나갔다. 표시받은 곳에 그물을 내려 두고, 조금 기다렸다가 끌어올리는 것을 반복한다.

그물을 끌어올릴 때마다 게가 몇 마리씩 들어 있었다.

잡은 게는 받은 자로 바로 크기를 잰다. 기준보다 작거나 암컷이면 그 자리에서 놓아준다.

게를 기다리는 동안 보트 옆으로 물범이 고개를 내밀기도 했다.

보트를 타고 잡은 게. 기준에 맞는 녀석들만 골라 담았다.

돌아와서 게를 맡기면 가게 옆 조리장에서 바로 삶아 준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큰 솥에서 삶아 나온다.

삶은 게는 반으로 갈라 손질까지 해서 쟁반에 담아 준다. 게 집게도 함께.

가게에서 굴과 조개도 조금 사서 함께 먹었다. 바로 앞 바다에서 잡은 게를 바로 삶아 먹으니, 따로 식당을 찾을 필요가 없었다.

노란 피크닉 테이블이 바닷가를 따라 줄지어 있어서, 다들 여기서 자기가 잡은 게를 먹는다.

옆 테이블에서도 게 손질이 한창이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네할렘 베이 안쪽의 작은 마을 휠러(Wheeler)를 지났다.

델레이 비치(Del Rey Beach)에서 레이저클램(Razor Clam) 해루질
오후에는 다시 북쪽으로 올라가 서클 크릭 근처의 델레이 비치로 향했다. 이번에는 레이저클램을 캘 차례. 시사이드 북쪽의 이 해변은 물이 빠지면 끝없이 넓은 모래밭이 드러나고, 이날도 썰물에 맞춰 레이저클램을 캐러 온 사람들이 많았다.

델레이 비치 주립 휴양지(Del Rey Beach State Recreation Site) 입구에 캠핑카를 세웠다.

모래 언덕 사이의 길을 지나면 바로 해변이다.

이곳은 차가 모래사장 안까지 들어갈 수 있는 해변이라, 해변 위에 차를 세워 두고 조개를 캐는 사람들도 많았다.

장화를 신고 그물망과 도구를 하나씩 챙겨 든 아이들. 미국 맛조개 레이저클램은 젖은 모래 위에 작게 움푹 파인 자국을 찾아, 그 자리를 재빨리 파 내려가야 잡을 수 있다. 레이저클램이 모래 속으로 파고드는 속도가 꽤 빠르기 때문이다. 파도가 쓸고 지나간 직후의 젖은 모래를 유심히 보면, 레이저클램이 숨을 쉬면서 남긴 작은 구멍이나 움푹 파인 자국(쇼, Show)이 보인다.
한국에서 대맛조개 해루질을 할 때처럼 땅을 두드리면, 쇼가 나타난다는 것을 알았다면 좀 더 쉽게 잡을 수 있었을텐데 이날은 그걸 몰랐었다. 미국 해루질은 처음이라 ㅎㅎ.. 사실 다른 조개에는 큰 관심이 없었고, 레이저 클램 하나가 목표이기도 했고.

자국을 찾으면 파이프 모양의 조개 채취 도구(클램 건)나 삽으로 모래를 파낸다. 레이저클램은 생각보다 깊이 들어가 있다.

아이들도 작은 삽을 들고 자국을 찾아 열심히 모래를 팠다.

이렇게 생긴 것이 레이저클램(Razor Clam)이다. 한국의 맛조개와 비슷한 조개로, 미국의 맛조개라고 생각하면 된다. 길쭉하고 껍데기가 얇다.
오리건에서 레이저클램은 하루에 처음 캔 15개까지만 가져갈 수 있는데, 크기나 상태와 관계없이 캔 순서대로 15개를 채워야 한다. 사람마다 각자 통을 써야 하고, 역시 조개·게 채취 면허가 필요하다. 이 일대 클랫섭(Clatsop) 해변은 어린 조개를 보호하기 위해 매년 7월 15일부터 9월 30일까지 레이저클램 채취를 금지하고, 독소 때문에 갑자기 금지되는 경우도 있으니 가기 전에 채취 가능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조개를 캐다 보니 어느새 해가 구름 아래로 내려오고 있었다.

델레이 비치의 해 질 녘. 젖은 모래가 거울처럼 하늘을 비췄다.

캠핑카에서 레이저클램 요리
서클 크릭으로 돌아와 저녁은 이날 캔 레이저클램으로 만들기로 했다.

이날 캔 레이저클램. 껍데기가 노랗게 윤이 난다.

끓는 물에 살짝 데치면 껍데기가 벌어지는데, 껍데기를 떼어 내고 내장과 모래주머니를 손질해야 한다.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다.

손질을 마친 레이저클램 살.

팬에 버터를 녹이고 파를 넣은 다음,

레이저클램 살과 마늘을 넣고 볶았다.
이렇게 직접 캐서 손질하고 요리까지 한 레이저클램 버터 볶음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서클 크릭 RV 리조트에서의 두 번째 밤이었다. 다음 날은 이곳을 떠나 컬럼비아 강 하구의 아스토리아(Astoria)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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