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명함 뒷편에는 왜 지도가 있을까?



한국의 회사로 파견을 와서 일하고 있는 외국인 친구와 이야기를 하다가, 친구가 문득 내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한국은 참 재미있는게, 명함 뒤에 항상 지도가 있어.."

처음에는 어리둥절했다. 내가 받고 알고있는 명함들은 대부분 앞에는 한글, 뒷편에는 영문으로 된 명함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친구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니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친구는 현재 종로쪽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식당을 갔다가 음식이 맘에 들면 그 식당의 명함을 꼭 집어온다고 했다. 그런데, 그렇게 명함을 모으다 보니 한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대부분의 식당이나 상점의 명함의 뒷편에는 어김없이 그 곳을 찾아올 수 있도록 지도가 그려져 있더라는 것이다.

그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나도 문득 내가 받았던 명함들을 생각해봤다. 그러고보니, 식당에서 가져온 명함들은 대부분 뒤에 찾아올 수 있도록 지도가 표시되어 있었던 것이 떠올랐다. 그리고, 외국의 식당에서 가져온 명함들도 몇개 살펴봤는데, 대부분 주소만 적혀있을 뿐 지도가 그려져 있는 식당은 거의 없었다. 몇몇개가 지도가 있기는 했지만, 주변 건물 위주의 지도가 아닌, 스트리트가 두어개 그려져 있고, 그곳에 위치가 표시되어 있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왜 한국에서 이렇게 명함 뒤에 지도를 넣기 시작했을까? 한국에는 거리 이름이라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2007년에 -길,-로 등의 이름을 갖는 새로운 주소표기를 시도하기는 했으나, 실질적으로 그것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거의 사장되어 버린 상황이다. 그렇다보니 위치를 알리기 위해서는 주변의 유명한 건물들과 도로 모양을 함께 표기한 지도가 필수가 되어버렸다. 적어도 유명한 건물들을 기준으로 찾아오면 그리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잇기 때문이다. 새로운 주소표기가 적용된지 2년이 다되어 가지만 여전히 기존의 주소를 전혀 대체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사람들이 새로운 주소표기에 적응을 하기 힘들었던 것도 하나의 이유지만, 더 큰 이유는 일관성과 관계가 없는 주먹구구식의 이름 부여와 할당으로 인해서 오히려 더 복잡한 주소 표기로 만들었다는 것도 한 몫을 한다. 몇몇 지도에서는 이 주소표기를 구 주소와 병행해서 사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까지 제대로 활용하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새로운 주소표기는 시행 당시부터 이런저런 문제가 많았다. 각 지자체간에 이야기가 맞지 않았던 이유도 있고, 전혀 지역과 연관이 없는 그런 이름들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러 곳에서는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의 길 이름을 정할 수 있도록 하기는 했지만, 일부분에 지나지 않았던 터라 역시 그렇게 정했더라도 제대로 활용되고 있지는 못했다. 결국 이렇게 엄청난 예산을 들여서 만들어 놓은 표지판에는 기존의 주소가 매직으로 덕지덕지 적혀있고, 그 외의 메모를 위한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어찌 낭비라 하지 않을 수 있을까. 본격적으로 새로운 주소명만을 사용하기로 한 날짜도 이제 몇년 남지 않았는데, 이렇게 가다가는 과연 제대로 적용될 수 있을까?


거기다가 마속님의 블로그에서 또 재미있는 소식을 보았다. 외국인을 위한 표지판 교체 작업으로, 기존의 -대로(daero), -로(ro), -길(gil) 등의 표시 뒤에 -Blvd(Boulevard), -Rd.(Road), -St.(Street) 등의 약자를 추가하기 위해서 표지판 교체 작업에 1,000억원을 투자하겠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외국을 여행하다보면 이런 표현에 익숙해지는 것은 아주 금방이다. 그저 어떻게 대입되는지만 알면 그 뒤로는 지도를 보는데 아무런 문제도 없다. 프랑스에서 거리이름에 Rue 등이 사용된다는거, 스페인어권에서는 Calle와 Carerra 등이 사용된다는거, 영어권에서는 Road나 Street 등이 사용된다는 것만 알면 그 뒤에 지도를 보는데 아무런 불편함도 없는데 또 엄청난 삽질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실질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지자체마다 통일되지 않은 주소의 다양한 표기들이 아닐까 싶다. 같은 구 내에서도 같은 길 이름을 다른 영문 표기법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 여전히 곳곳에서 눈에 띄기 때문이다. 저렇게 삽질을 하기 보다는, 대대적으로 이런 잘못된 표지판들을 하나의 규칙을 세워서 그에 맞게 싹 정비하는 것이 더 필요한 정책이 아닐까?

이렇게 하나하나 제대로 통일되어 가고, 새로운 주소가 제대로 정착이 된다면, 우리나라 식당이나 상점들의 명함 뒷편에 주위의 유명한 건물들을 이용해서 만든 지도를 더이상 보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우리나라도 이러한 새로운 주소표기를 이용해서 더욱 찾아가기 쉬운 지도가 나오는 날이 오겠지 싶다. 한국을 여행하는 친구들도 한국에서는 정말 길을 찾기 어렵다는 말을 많이 하고는 하는데, 이런것들이 제대로 다 적용되는 시점에는 그런 불편이 다른 여행자들에게서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문제는 이런 것들이 제대로 정비되어 적용되는 일이 요원하게만 보인다는 것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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