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여행 #21 - 쿠바의 유일한 전기기차를 타고 만딴사스로 떠나다


쿠바 여행을 할 당시만 하더라도 기차라는 것에 푹 빠져있어서 가는 나라마다 다양한 기차들을 타보기 위해서 가 본 곳들이 여러군데 있었다. 쿠바의 만딴사스도 그래서 방문하게 된 도시인데, 정말 이쪽으로 가는 기차와 관련된 정보가 거의 없어서 찾아가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다행히 말레꼰에서 친해진 쿠바 현지인 친구가 마침 그 근처에 살고 있어서 정보를 준 덕분에 시도를 해 볼 수 있었다.

처음에는 아바나에서 기차를 타고 다른 도시도 가 볼 생각이었지만, 아쉽게도 기차 정비로 3일간 기차가 없을거라는 소식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그 대안으로 이 기차를 타보기로 했다. 아바나에서 기차를 타고 만딴사스까지 가는데 걸리는 시간은 총 4시간 전후. 반대로 버스를 타고 가면 2시간이면 가는 거리지만, 그래도 쿠바의 유일한 전기기차라는데 의의를 두고 싶었다. 한국에서야 지하철 등이 모두 전기로 다니지만, 쿠바에서는 또 상황이 다른거니까.


만딴사스로 가는 기차는 아바나에서 출발하지 않기 때문에 까사블랑까(Casa Blanca)라는 곳까지 페리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 아침 8:35분 기차를 타고 갈 생각이었기 때문에 페리 터미널에 7시 반쯤 미리 도착했다. 이 페리를 이용하는 외국인 여행자는 거의 없는 것인지, 모든 요금을 내셔널 페소(CUP)로 받고 있었다. 나야 현지에서 길거리 음식을 사먹느라 좀 바꿔둔 것이 있어 다행이었는데, 내 뒤로 도착한 2명의 여행자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을 하고 있었다.

CUP로 내면 100원정도밖에 안될 금액이지만, CUC로 내면 거의 2000원에 육박하는 가격이었는데 담당자는 무조건 CUP로만 받아야 된다고 우기고 있었다. CUC로 받으면 그들한테도 이득일텐데. 그렇게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는 그들을 보다가 내가 그냥 그들의 페리 비용을 내줬다. 그래봐야 200원이었으니까.


페리터미널에서 보는 풍경. 아직 이른 아침이라 해가 높지 않은 곳에 떠 있었다.


그렇게 200원의 페리 비용을 내주고 나니, 그들이 고맙다며 가방에서 사이다를 하나 꺼내줬다. 가세오사(Gaseosa)는 음료수라는 의미인데, 씨에고 몬뗴로(Ciego Montero)는 미국산 제품이 팔리지 않는 쿠바에서 가장 자주 마시게 되는 음료수 중 하나이다. 콜라도 마찬가지로 이 브랜드인데, 맛은 음..; 어쨌든 그들이 준 음료수는 여행 출발 직전에 냉장고에서 꺼내온건지 아주 시원했다.


두명의 외국인과 나를 제외하면 모두 현지인. 궁금해서 옆에 있던 현지인에게 물어보니 실제로 이 페리를 이용하는 외국인 여행자는 거의 못봤다고 했다. 다만 까사블랑까가 아닌 다른 지역으로 향하는 페리에는 외국인들이 꽤 있는 편이라면서, 또 야구 이야기가 나왔다. 쿠바에서는 어떻게 대화를 시작하던 야구로 끝난다.



아바나 동쪽의 항구 모습. 꽤 오래되어 보이는 배들과, 새로운 배들이 섞여있었다.


나에게는 여행이지만, 이 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일상인 듯. 다들 무료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긴, 나도 지하철을 탔는데 신기하다는 듯이 사진을 찍는 외국인을 보면서 비슷한 생각을 했었으니.



페리를 타고 가는 동안 해는 점점 더 높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러고보니, 이 페리를 타려고 부랴부랴 움직인 날이 쿠바에서 가장 일찍 일어났던 날인거 같다. 보통 여행만 하면 10시 이전에는 일어나지도 못하는 게으름의 대명사이긴 한데, 더운 나라에 오면 느끼는 것이.. 사람들이 참 부지런하다는 것. 아마도 정오가 지나면 엄청더워지니 더 일찍 일하기 위함이겠지만.


그렇게 페리에서 내리고 나니, 바로 길 건너편이 까사 블랑까 역이었다. 나와 함께 페리를 타고 온 외국인 친구들은 기차가 목적지가 아닌 듯, 나에게 인사를 하고 반대방향으로 사라졌다. 그렇게 역에 가 보니 열차가 어느새 도착해서 사람들을 태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시간을 보니 출발시간까지는 20분이 조금 안남았었는데, 도저히 표를 파는 곳이 보이지 않았다.


이번 기차를 놓치면 다음 기차는 무려 4시간 뒤. 하루에 5번밖에 없는 노선인데다가, 이걸 타고 돌아올 생각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번 기차를 놓치면 굉장히 난감했다. 다행히도 이 곳 청소를 하고 있는 직원같아 보이는 사람이 있어 물어보니 기차비는 기차가 출발하고 나면 거기서 현금으로 내면 된다고 알려줬다. 덧붙여서, 외국인은 외국인 여금이 따로 있다는 이야기까지.


아침나절의 빛을 받은 까사블랑까 역. 나를 제외하면 모두 현지인들이었다. 그나저나 평일이어서 그런것일까, 사람이 그렇게 많지만은 않았다. 사실, 그것보다는 버스가 더 빠르니 이 기차노선을 굳이 이용하지 않는 것일수도 있다 싶었다. 나같은 사람이 관광객으로도 거의 오지않는 루트인데다가, 현지인들도 버스가 더 빠르다는 것을 알테니.



까사블랑까 역의 풍경.


굉장히 오래된 기차라는 것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창문도 이제는 우리나라에서 보기 힘들어진 위에서 아래로 내리는 형태. 얼핏 보면 지하철같이 생기기도 했는데, 이 열차는 1917년에 처음 다니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이용되어 온 녀석이 이 녀석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수십년이 되었다고 해도 믿을만큼의 퀄리티를 자랑하는 기차들이 대부분이었다.


아무래도 고칠 수 있는 돈과 자재가 없기 때문에 이렇게 유지되는 것이 가장 큰 이유겠지만. 하긴, 최근에는 장거리 기차도 자재부족 및 연료부족으로 운행 편수를 줄이기까지 하는 상황이라고 하니. 

 



기차에 타자마자 등받이가 직선로 된 철제의자를 보고서 오래된 기차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기차 각 량을 연결하는 곳은 문이 없거나 제대로 닫히지 않는 곳이 다반사였고, 좌석의 팔걸이도 이미 떨어져나가고 없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등을 직선으로 펴야 했던 이 기차의 좌석은 당연히 그냥 딱딱한 나무.


4시간이나 가야 하는데 너무 고단한 길이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뭐 나 말고 탄 사람이 10명이 채 안되었으니 4좌석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어 문제는 되지 않았다. 거기다가 그 10명도 꽤나 호기심이 많은 사람들이라 가는 내내 그리 심심하지도 않았다.



제대로 닫히지 않던 기차의 문.



쿠바의 전원 풍경. 아주 풍족해 보이는 느낌은 아니었다.



그렇게 기차가 출발하고 30분쯤 지나자 직원이 돌아다니면서 목적지를 물어보고 티켓을 팔았다. 기차비는 당시 환율로 대략 3천원 정도. 타고가는 시간을 따지자면 그렇게 비싼것은 아닌 듯 싶었다. 워낙 쿠바 자체가 외국인 버스가 비싸긴 하니까.



창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달리는 기차를 사진에 담아보았다. 얼핏 봐도 기차의 대부분이 녹이 슬어있는 듯 싶다. 이렇게 창 밖으로 머리를 내밀면 위험하지 않을까도 싶지만, 워낙 달리는 속도가 느려서 별 문제는 없었다. 시속 20~30km정도를 유지했다.



중간에 멈춰섰던 간이역. 이름도 없었고, 저렇게 정류장(?) 하나만 덜렁 있었다. 그래도 꽤 많은 사람들이 오르고 내렸다.



처음으로 만났던 꽤 큰 규모의 역. 바로 전의 간이역과는 확실하게 차이가 난다. 이 까사블랑까<->만딴사스 루트는 단 2대의 열차가지고 운행을 하는 것 같았다. 그렇기 때문에 한대라도 고장나면 스케쥴이 반토막 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달려가면서 느낀거지만 이쪽으로는 별다른 교통수단이 보이지 않기는 했었다. 그렇다는 것은 여기 사람들에겐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다는 걸까.



이 역의 이름은 허쉬(Hershey)역.


우리가 알고 있는 허쉬 초콜릿의 허쉬가 맞다. 이 철도를 세운 것이 바로 이 허취 초콜릿 컴퍼니 인데, 이 철도가 세워질 1917년만 하더라도 미국의 투자가 상당히 많았던 시기였다. 쿠바가 사회주의로 변하게 되면서 미국 자본들이 모두 철수할 때 남은 이 유산이 아직도 쿠바에서는 현역으로 달리고 있는 것이다.




만딴사스로 가는 풍경은 조용한 전원 풍경의 연속이었다. 높은 산이 없는 쿠바이기에, 팜트리와 농사를 짓는 사람들의 풍경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지루하다기보다는, 여태까지 봐 온 대도시의 쿠바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라 오히려 신선했다.



앞 좌석에 앉아 가시던 할아버지.


이 사진만 보더라도 기차 안에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저 할아버지도 나에게 처음에는 말을 걸어오긴 했는데, 이상하게 내 스페인어를 알아듣지 못하셨다. 내 발음이 그렇게 안좋았나 ㅠㅠ



기차 안에서 담배를 피는 것도 자유. 정확히 말해서 쿠바 사람들은 담배가 아니라 시가(Cigar)를 피우고 있었다.



여기도 건물 하나만 달랑 있었던 간이역. 그래도 깔데론(Calderon)이라는 이름은 붙어있다.



전원의 소 한마리.


4시간동안 거의 이런 한적한 풍경이 이어진다. 집 몇채 나온다 싶으면 간이역이 한개 정도 있었고. 이렇게 느긋하게 20~30km로 달리니 버스로 2시간이 채 안걸리는 거리가 4시간 혹은 그 이상 걸리는 것도 이해가 간다.



화물열차.



그렇게 4시간이 조금 넘었던 쿠바의 전기기차 여행은 막을 내렸다. 만딴사스는 사실 여행자들에게는 그다지 매력이 없는 도시이기 때문에 여기는 잠시 스쳐지나가기로 하고, 하루의 일정을 마치면 바로 다시 아바나로 돌아가는 것으로 계획을 세웠다. 돌아갈 때는 정말 지독히 느린 기차가 아니라 빠른 버스를 타고 가리라 생각하면서.



만딴사스 역.

만딴사스에서도 다소 외곽에 위치하고 있어서 도심으로 가는데 살짝 애를 먹기는 했지만, 그래도 한번쯤은 타 볼만한 경험이었다. 그러고보니 아직도 한국에서는 이 기차를 이용했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그렇게 매력이 없는 기차여행이려나? 아니면 너무 불확실성이 많은 루트라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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